마을소개

아름다운 볼거리, 추억이 함께하는 즐길거리, 다양한 먹거리가 함께하는 자란만 권역

살기 좋은 마을, 아름다움 마을, 아름다운 추억이 함께하는 마을, 다시 오고 싶은 마을

어울림마을, 어촌체험마을, 친환경에코마을

자란만 권역은 경상남도 고성군 하일면의 동화리, 춘암리, 하이면의 덕명리 3개 마을이 하나되어 만들어진 마을입니다.

아름다운 마을

마을 주민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마을

동화리(東禾里)

동명의 유래(由來)

동화리는 하나의 법정리로 형성된 마을로서 1924년 3월 1일자에 행정구역을 통폐합할 때 하일면의 동화리로서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동화리를 솔복개(松浦)라고도 함은 임진왜란때 수군 통제사의 통제구역으로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어 산림이 우거져 아름드리 노송이 바닷가를 뒤덮고 있어 "솔복개" 송포동(松浦洞)이라 하였다고 하며 그후 분동으로 동명을 송학동(현·동문·대구막·간이골)과 청학동(큰골)으로 불렀으며 한일합방 이후에는 "구진" 또는 "동화"라고도 하였는데 구진이라는 동명이 일반화 되어 있었다.

사적(史跡)

  범계(梵溪)

동화리 소을비포 옆에 있는 만인영(萬仁營)이 있었던 곳으로 후에 영을 당포(唐浦)로 옮겨 갔다고 한다.

  소을비포 성지(所乙非浦 城址)

동화리에 있는 성터로 남쪽으로 사량도를 방패삼아 동화리와 춘암리 사이의 깊숙한 내만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포구의 요쇄지로서 세종실록, 성종실록, 중종실록, 난중일기 등에 소을비포에 대한 기록들이 많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성의 진영은 조선조 세조 이전에 구축된 것으로 알 수 있으며 통제영이 폐지 되기까지(1894년) 존치한 것으로 지금도 성보(城堡)의 흔적이 남아 있다.

  가매섬(거북섬)

동문 남쪽에 있는 섬으로 전설에 거북이가 육지로 걸어들어오는 것을 선원이 정지시켜 섬으로 변하였다고 하여 "거북섬"이라 부르고 있으며 옛날 소금가마를 걸어놓고 소금을 제조한 곳으로 "가마섬"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대구만

임란때 대군을 주둔 시킨 곳으로 '대군막"이라 부르고 있다.

  기꽂먼덩(기 꽂은 먼덩)

대구막 남쪽에 있는 산으로 왜적이 이곳에 침입하여 산위에 기(旗)를 꽂았다는 먼당이다.

  북섬(토끼섬)

만아섬 서남쪽에 있는 섬으로 지형이 "북"처럼 생겼다하여 "북섬" 또는토끼처럼 생꼈다고 "토끼섬" 이라 부르고 있다.

춘암리(春岩里)

춘암리는 1914년 3월 1일자(조선총독부 경상남도령 제2호)로 행정구역을 통폐합 조정할 때 장 춘(長春)·신기(新基)·입암(立岩)을 병합하여 장춘과 입암의 이름을 따서 춘암리라 하였는데 일설(一說)에 의하면 이 지역이 사계절 기후가 온화한 봄과 같다하여 봄 춘(春)자와, 선바위가 있다 하여 바위 암(岩)자를 따서 춘암으로 하였다고도 전하고 있으며, 행정리로 춘임·용암포(龍岩浦), 전·입암(立岩), 맥전포(麥田浦)의 3개 마을이 있다.

춘암(春岩)

동명의 유래(由來)

암마을은 춘암리를 분도하면서 당초에는 춘암과 신기를 합하여 춘암1구로 맥전포와 입암을 합하여 춘암2구로 분동하였다가 1986년 6월 30일자 고성군 조례 제961호로 맥전포를 분동하면서 춘암1구를 춘암으로 춘암2구를 입암으로 그리고 맥전포를 분동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자연마을로 춘암동과 신기동마을이 있다.

용암포(龍岩浦)

동명의 유래(由來)

용암포 마을은 춘암리에서 분동된 행정리로 당초 맥전포와 입암을 병합하여 춘암 2구로 하였다가 1986년 6월 30일자(고성군 조례 제961호)로 맥전포를 행정리로 분동 하면서 입암 고유의 마을명인 입암으로 하여 오다가 1996년 9월 20일자(고성군 조례 제1488호)로 용암포로 개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마을명을 당초 입암(立岩)으로 한 것은 마을 앞 바닷가에 있는 바위가 병풍처럼 생겨 서있는 바위라하여 "선바위", 입암(立岩)으로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맥전포(麥田浦)

동명의 유래(由來)

맥전포는 춘암리의 행정마을로 마을 뒷산에 있는 묘비(墓碑)에 「1856년 3월 3일 고성현으로 일운면 선암(仙岩)에 장사 지내다」(哲廟 丙辰 三月初三日 葬干 固城縣 一運面 僊 岩 壬坐之 原)로 된 비문이 있어 이를 미루어 보아 고성이 1018년(고려현종 9년)에 고성현으로 개칭될 이전의 하일운면 때부터 하일운면의 선암(仙岩)으로 불리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덕명리(德明里)

덕명리는 본래 하이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3월 1일자로 고성군이 행정구역을 병합할때 딱밭골(楮田)과 봉화골을 병합하여 덕명리로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행정리로 덕명(德明)과 제전(楮田) 마을이 있다.

덕명(德明)

동명의 유래(由來)

덕명리는 1914년 3월 1일자로 고성군의 행정구역 통·폐합시 덕명리(단일법정리)로 하여 오다가 1995년 4월 26일자로 제전(楮田) 마을이 행정마을로 분동되면서 덕명(德明)은 행정마을로 되어오늘에 이르고 있다.

제천(楮田)

동명의 유래(由來)

제전마을은 1995년 4월 26일까지 덕명리의 자연마을로 되어 오다가 고성군 리장정수조례 제1429호(1995년 4월 26일)로 분동되어 행정리로 오늘에 이르고 잇으며 제전 마을의 동명은 마을에 닥나무밭(楮)이 많이 있었다고 하여 "닥밭골" 제전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지명 일화(逸話)

  촛대바위

제전마을 앞쪽 바다에 있는 바위로 바위가 촛대같이 생겼다하여 붙혀진 이름이다.